상처
고영
품을 팔러 배추밭에 나가신 어머니
빈속에 걷는 머릿수건이
배추 흰나비처럼 나풀거렸다
찬장 속 밥그릇마다 배추꽃들이 가득했다
나는 밥대신 배추꽃을 먹었다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흰빛들이 퍼져나갓다
몸속에서 들끓는 흰빛들로 나는 점점 투명해지더니
부풀어 오르더니, 자꾸 가려워지더니
눈에서, 입에서, 똥구멍에서 날개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체할 수 없이 눈부신 흰빛이었다
나는 몇 번 날개를 펼쳐 보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상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빠져 죽어도 좋을 만큼 시퍼런 하늘이었다
ㅡ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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