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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향기 취미]/내발길 머무는곳

소요산 자재암을 찿아서

by 맹길스 2018. 1. 5.





소요산  자재암은 원효가 지었으며  독특하게도 요석공주와의 전설도 함께 서려 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하늘 받칠 기둥감을 내 찍으련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1300여년 전 서라벌 거리에서 부른 노래다.

(자루는 그 생김이 남자의 생식기를 의미하며, 자루없는 도끼란 남편없는 여인을 뜻함)

 

사람들은 「자루없는 도끼?」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이 은유를 알아들은 태종 무열왕은 『대사께서 귀부인을 만나 어진 자식을 낳고 싶어하신다. 나라에 어진 이가 있게 되면 그보다 더 큰 유익은 없다』며 원효를 불렀다.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신 원효는 요석궁으로 인도되어 옷을 말렸다.

 

요석궁엔 태종 무열왕의 둘째 딸로 남편을 백제와의 싸움에서 사별한 후 혼자 있던 요석공주가 있었다. 원효가 요석궁에 묵게 된 뒤 요석공주는 아이를 잉태하였으니 그 아이가 곧 설총이다.

 

만삭이 된 요석공주가 남편 원효를 만나기 위하여 원효의 고향 집인 경북 경산 초개사를 찾았으나,

원효가 만나주지 않아 요석공주는 원효의 고향인 불지촌에서 설총을 출산하였다고 한다.

 

막상 아기는 출산하였지만 양육하기가 어려웠던 요석공주는 주변 스님들의 안내로 지금의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소재 반룡사에 머물게 되었고,

이곳에서 설총은 유아기를 요석공주와 함께 보내었다고 한다.

 

딸과 손자가 보고싶은 신라 무열왕 내외는 몰래 경주에서 산내 지역을 거쳐 지금의 '왕재'를 통하여 반룡사 뒷산을 넘어 딸 요석공주와 손자 설총을 만났다는데,

신라왕의 내외가 이 산을 넘어왔다 하여 '왕재'란 이름이 붙혀졌다고 한다.

 

파계 후 세속의 옷으로 갈아입고 『모든 것에 거리낌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느니라』는 「무애가」를 부르면서 여러 기행을 일삼던 원효는 소요산 계곡 벼랑에 초막을 짓고 정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찾아와 원효를 만나려 했으나 원효는 만나주지 않았다.

요석공주는 소요산 입구에 궁을 짓고 원효의 환속을 기다렸다.

 

하지만 원효는 아들 설총을 보는 것보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게 더 중요했던가보다.

어느 비오는 날 밤 약초를 캐다 길을 잃은 아녀자로 변신한 관세음보살이 원효에게 하룻밤 재워줄 것을 부탁하며 은근히 유혹했다.

그러나 원효는 『마음이 움직이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노니, 나는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며 물리쳤다.

그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다.

이튿날 좌선 중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원효는 기쁨에 겨워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불렀다.

 

절 집은 대부분 아주 맛 좋은 석간수가 솟는데, 원효가 터를 잡은 자재암 나한전 동굴에서 흐르는 원효샘(원효정) 역시 물맛 좋기로 유명하다.

고려때 서사시인 이규보도 원효샘의 물맛을 보고 "원효가 차를 끓이던 샘물이 젖같이 맛있네" 하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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